나래치는 펭귄

<침묵이라는 무기_코르넬리아 토프 지음, 가나출판사>에서

대지의 마음 2020. 9. 2. 08:38

 

 

침묵이라는 무기-의도적으로 침묵할 줄 아는 사람만이 원하는 것을 갖는다!

_코르넬리아 토프 지음

_장혜경 옮김

_가나출판사

 

 

 

-일종의 자기개발서. 그럼에도 나는 '모든 책은 배울만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 이러저러한 스트레스 때문에 말을 해놓고 후회하는 일에 기분이 상했을 테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침묵이라는 무기'라는 제목만 봐도 마음이 갔을 것이다. 이 책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5초만 더 시간을 들여 침묵하고 고민했으면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싼 값의 전자책으로 구입한 걸 보니 나름 고민을 있었으리라.

-무엇보다 내게 도움이 된 것은 풍부한 사례에 비춰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과거 내가 얼굴 붉혔던 경험들이 떠올라 후회스러운 감정에 휩싸이기도 하고, 창피한 마음에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다. 묵직한 침묵의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면 그런 과거는 훨씬 소소한 일상으로 스쳐 지났을텐데. 도대체 우리는 왜 단 1분의 침묵도 견디지 못하는 걸까?

-근래 들어서도 타인의 말에 감정이 상하거나,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에도 곱씹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걷는 시간이 많아진 탓도 크겠다. 그 때마다 나는 후회를 하거나 마음 속으로 다음에는 어떻게 답변을 해야 한다라는 고민을 하지만, 대부분은 혼잣말로 짜증을 내고는 앞으로는 말을 섞지 말아야겠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과거에도 그랬을까? 다르다면 과거와 현재의 내 모습은 무엇이 달라졌을까? 책 곳곳에서 발견되는 경구들은 내 생각과 행동을 부끄럽게 만들고, '침묵의 시간'이 왜 필요한지 확인시켜 준다.

 

-아래 몇 개의 문구들을 옮겨왔다.

 

 

-"잘 알면 세 마디로 족하다. 잘 모르니 서른 마디가 필요한 법이다."_독일 작가 한스 카로사

 

-말을 현명하게 선택하면 적은 말로도 상대를 설득할 수 있다. 말이 많다는 것은 할 말이 많다는 증거가 아니라 게을러서 하고자 하는 말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효과적인 말을 찾지 못했다는 증거다.

 

-침묵도 소통의 방식이다. 말과 침묵은 서로를 보완한다. 그래서 말과 침묵의 균형이 중요하다.

 

-당신이 아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당신이 모르는 것은 더 중요하다.

 

-그가 물었다. "그 완벽주의에다 사람 무시하는 말투, 정말 바꾸고 싶지만 도리가 없어요. 하지만 제 반응은 바꿀 수 있겠죠. 어떻게 하면 더 멋지게, 더 지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까요?" 정말 지적인 질문이다.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자, 잠시 후 투표에 들어가겠습니다. 결정을 내리기 전에 1분 동안 침묵의 시간을 갖도록 합시다."

 

-어떤 회사의 ARS 응답, "지금은 모든 상담원이 통화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기다리시는 동안 고요의 소리를 들으시게 될 겁니다." 음악도, 안내문도, 짜증나는 신호음도, 하다못해 기계음조차 없었다. 그냥 조용했다. 완벽한 정적이었다. 어찌나 좋았던지 상담원들이 통화를 더 오래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말을 잘 하는 사람보다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이야말로 상대에게서 동등권과 존엄성을 빼앗는 행위다.

 

-남자들은 대놓고 이런 유치한 싸움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나 5주 동안 깁스해야 된대"라는 사람에게 "겨우 그 정도로 엄살은....... 나는 무릎에 7주 동안이나 깁스하고 다녔어!"라고 면박한다.

 

-아, 괜히 그런 말을 했네. 참을 걸." 말을 뱉은 후에 이렇게 후회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말을 할 때는 참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이성이 차단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선불교에서는 사람이 말을 할 때는 온전히 자기 자신이 아니라고 한다.

 

-우리 문화는 생각 없음을 장려한다. 3초만 대답이 늦어도 상대는 초조해 한다. 우리 시대는 곰곰이 생각한 대답에 관심이 없다. 그러니 무슨 말을 하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말하는지가 중요하다. 생각이 없고 하나마나한 소리라도 상관없다. 하지만 딱 5초만 생각하고 말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다음 질문에 최대한 빨리 대답하라 "어떻게 지내요?"

대답했는가?

그럼 이번에는 같은 질문에 5초 생각하고 대답해보자.

 

-왜 한 시간만이라도 스마트폰을 끄지 못할까? 왜 계속 말을 늘어놓는 것일까? 소음과 스트레스 때문에 돌아버릴 지경이면서도 왜 차에 오르면 라디오부터 켤까? 왜 우리는 단 5분의 침묵도 견디지 못하는 걸까?

 

-수학자 파스칼_"인간의 모든 불행은 오로지 방 안에 조용히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생긴다."

 

-퇴근 후나 주말에 조용한 방에서 모든 기계를 꺼보자. 끄고 나서는 그냥 아무 것도 하지 마라. 아마 생각보다 힘들 것이다.

 

-자신을 찾는 것은 고고학적 발견 같은 일회성 사건이 아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자기 자신을 찾아야 한다. 너무 오래 자신과 떨어져 시끄러운 세상에서만 살아가다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원래 감정을, 다음으로는 자기 자신을 잃게 된다. 정체성의 핵심은 '인지'가 아닌 '정서'다.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 논리적인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다.

 

-나는 달리거나 산책을 할 때는 아무 것도 듣거나 보지 않는다. 그래야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차분해지며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나도 얼마 전 침묵 세미나에 참가했다가 동작의 효과를 직접 경험한 바 있다. 강사가 우리에게 일어나서 각자 천천히 방을 걸으며 자신의 동작 하나하나를 느껴보라고 했다. 처음에는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것 역시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소음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모든 동작을 느끼기에는 너무 빨리 걷고 있음을 깨달았다.

 

-걸음을 늦추었다. 달 위를 걷는 우주비행사처럼 천천히 걸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빠른 것 같았다. 한 시간에 한 걸음씩 옮긴다 해도 신체의 모든 동작을 다 느끼고 음미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상당히 오랜 시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됐다. 단순히 생각을 멈춘 상태를 넘어 온몸과 마음이 존재의 중심을 향해 집중했다. 너무도 편안했고, 그 상태를 오래오래 유지하고 싶었다. 그렇게 편안하면서도 활기에 넘쳤다. 또 얼마나 많은 것을 느꼈는지,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모른다. 그 순간, 정말이지 쇼핑할 때보다도 더 시니 나고 생기가 돌았다.

 

-타인은 당신에게 큰 관심이 없다.

 

-부부들은 해가 갈수록 대화를 하지 않는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년간 결혼생활을 이어온 부부가 하루에 대화하는 시간이 불과 4~8분이라고 한다. 그마저 절반은 자녀, 집안일 이야기에 불과하고 감정이나 관계, 계획 등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한다. 이쯤에서 드는 의문, 그런데 대체 왜 많은 사람이 결혼이란 걸 하는 걸까?

 

-내가 추천하고 싶은 말과 침묵의 비율은 각각 1:3이다. 침묵이 말보다 3배 더 길어야 한다.

 

-자기 과시형 리더에게는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

 

-종교가 있건 없건 상관없다. 종교의 명상법이건 일반적인 명상법이건 명상의 결과는 항상 놀랍다. 평소 명상을 하는 사람은 명상을 하지 않을 때에도 혈압이 낮고, 긴장을 덜하며, 심근경색 위험이 절반에 불과하다. 혈액검사 결과도 더 좋다. 미국에는 의학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 암 환자들을 명상만으로 치료하는 병원이 있다. 이 환자들이 건강해지는 것은 현대식 치료나 약이 아닌 하루 20분의 명상과 침묵 덕분이다.

 

-휴식조차 이렇게 세상의 리듬에 맞추다보니 쉬어도 도무지 쉰 것 같지가 않다. 휴식이 너무 짧았던 것만 같다. 틀렸다! ‘길지 않은 것이 아니라 깊지 않았던 것이다.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시면서 수다를 떨고 인터넷 서핑을 하는 것은 고요한 휴식이 아니기에 힘을 주지 못한다. 휴식 속에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고요 속에 힘이 있다.

 

-인간은 이성을 담당하는 뇌부위가 활성화되기도 전에 이성적인 선택을 한다. 무슨 말이냐고? 그러니까 이성은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결정은 직관이 한다. 이성은 직관이 내린 결정을 나중에 정당화할 뿐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이성은 행위가 끝난 후 그 행위를 정당화하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고요를 찾으면 의미를 발견할 수 있고, 힘을 발견할 수 있으며,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 그러나 이제 떠드는 것은 멈추고 펜을 집어 들거나 노트북을 펼치자. 그리고 글을 써보자. 당신을 표현하라!

 

-침묵과 고요를 만나라고 해서 세상을 등지고 산으로 들어가 혼자 조용히 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균형을 위해서라도 멈추지않는 소음과 허둥대는 분주함의 대척점이, 침묵과 고요의 오아시스가 필요하다. 넓고 웅장할 필요도 없다. 짧은 순간이면 충분하다. 이를테면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