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즉생 필생즉사 - 죽기를 각오하면 산다>는 말을 처음으로 한 사람은 춘추전국시대의 가장 비극적 풍운아 오자서입니다. 76번을 싸워 12번을 비기고 64번을 이긴 그가 병법의 달인이 되기까지는 가슴에 맺힌 커다란 한이 있었습니다.
발단은 여자 때문이었지요, 오자서의 아버지는 태자를 가르치는 대부였는데 초나라 왕이 며느리 될 여자가 너무 이뻐 그만 빼앗아 간 것입니다. ( 조선시대 세조도 며느리를 탐하다 미수에 그쳤지요 ) 태자의 편이었던 오자서의 아버지는 눈에 가시가 되어 결국 모함을 당하는데 초왕은 두 아들을 불러오면 살려주겠다고 음모의 편지를 쓰게합니다. 오자서의 큰아들은 죽을 줄 알면서도 아비의 편지를 보고 아니 가면 불효라며 성으로 들어가고 둘째 오자서는 아비의 억울한 죽음을 복수하지 않으면 그 또한 불효라고 초나라를 도망칩니다. 그는 결국 오나라의 명장이 되어 초나라를 멸망시키고 초왕의 무덤을 파헤쳐 300번의 채찍을 가합니다. 그때 그는 < 일모도원 - 해는 기우는 데 갈길이 너무 멀다 >라는 비통한 심정의 말을 남깁니다.
<와신>의 월왕이 중국 최고의 미녀 서시를 보내 <상담>의 오왕 부차를 미혹시키자, 오자서는 충언을 하고 이미 색계에 흠뻑 빠진 오왕은 그에게 자결하라 칼을 보냅니다. 마침내 오자서 없는 오나라는 가시나무 침대에서 복수의 그날을 꿈꾼 월왕 구천에게 멸망하게 됩니다.
위 이야기는 흔하게 알고있는 복수의 고전입니다. 요즘 드라마에도 <복수>는 마르지 않는 소재입니다. 얼마전 양평가는 길에 우연히 DMB에서 <자이언트>라는 드라마를 보게되었습니다. 눈이 상큼하게 찢어진 박진희도 좋지만 후배 이범수의 연기도 돋보여 요즘 잠 안오는 밤이면 IPTV 재방송보기를 누릅니다. 7,80년대 강남땅을 둘러싼 시대극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결국은 남녀의 사랑이 주가 되는 통속 드라마입니다. 여기에 <복수>라는 양념이 들어가지요. 이범수의 아버지가 출세주의자 군인에게 속아 총을 맞고 어머니는 강남에 산 땅을 찾아가다 연탄가스로 사망합니다. 고아가 된 이범수 형제가 권력의 핵심이 된 (5공시대의 이학봉 같은) 정보석에대한 비현실적 복수전이 그 내용입니다.
시시콜콜한 다른 드라마보다는 그래도 보는 재미가 있어 어제밤에도 재방송보기를 눌렀습니다.
드라마 속에 두환이도 가끔 나오고 80년대의 유행가도 가끔 나옵니다. 드라마 전개하곤 상관없이... 그러다 어젯밤에는 그만 울컥했습니다. 드라마가 슬퍼서가 아니라 드라마 속에서 간주로 들려오는 한 노래를 듣다... 갑자기 그가 생각났던 것입니다.
마지막 남기신 삶과 죽음은 하나다라는 말을 전 이해못했습니다. 아니 용납할 수 없었나 봅니다.
그런데 <개여울>이란 노래를 듣다 남기신 그 말뜻의 행간을 비로서 발견 했습니다.
< 가도 아주 가지는 않겠노라는 그러한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남겨진 우리가 < 파릇한 풀포기로 돋아나 >
<굳이 잊지말라는 부탁>이었던 것입니다.
31년이 지났는데도 유신독재자를 잊지 못해 아버님은 기일마다 동작동 국립묘지를 찾습니다.
우리도 앞으로 31년 뒤에 봉하마을을 찾을 수 있을까요? 얼마나 줄어들까요?
사람은 망각이라는 기능으로 슬픔을 제어합니다.
그 슬픔을 잊지 않겠다고 부차와 구천은 쓸개를 맛보고 가시나무에서 잠을 잤습니다.
아무도 원망하지 말라 하셨지만
복수는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복수의 시작은 잊지 않는 것부터 입니다.
삶과 죽음은 하나라는 뜻은 <가도 아주 가지는 않겠노라는>그분의 약속이고 잊지말라는 그분의 부탁입니다.
사람사는 세상에 들어오면 시인들의 추모시를 꼭 읽습니다.
간사한 내 망각세포를 정화시키기 위해서...
앞으로는 흔들리고 나약해질 때마다 <개여울>을 들으렵니다.
개여울 - 김소월 詩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히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 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約束)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