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와 고니_문태준 산문집

자라와 고니

_문태준의 산문집 「느림보 마음」에서 옮겨옴.

 

 

 

말에는 그 사람의 밑천이 드러납니다. 요즘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을 듣고 있으면 참 황망합니다. 당신은 이런 사람들과 대화를 계속하시겠습니까. 험한 말을 듣고 있을 당신의 마음이 산산조각 난 유리거울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너무 참아도 병이 생긴다지만 너무 참지 못하는 것도 병입니다. 요즘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말을 주고받는 데 3초를 기다리지 않아도 될성싶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말은 한 척의 배와 같다 했거늘. 저편에서 이편으로 배가 건너오기를 기다리는 미덕이 사라졌습니다. 너무 조급합니다. 따질 것은 따져야겠지만 오가는 말에는 날 선 공박뿐입니다.

 

말의 패총을 보는 것 같습니다.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을 보아도 그렇고, 정치가들이 카메라 앞에서 쏟아내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에 관용과 은유가 없습니다. 나무둥치를 찍어대는 도끼의 말뿐입니다. 용렬하고 천한 말과 남을 괴롭히는 말은 있지만, 멋지고 도리에 맞는 말이나 잘 조복하는 말, 때에 따라 헤아려 결정한 말을 듣기는 어려워졌습니다. 말에 고약한 냄새가 납니다.

 

부처가 어느 날 호되게 욕을 얻어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부처는 이에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걸 지켜보던 제자가 물었습니다. 험한 욕설을 듣고도 어찌해서 당신은 가만히 계시느냐고. 그때 부처가 말하길, 저이가 나에게 욕설을 하더라도 내가 욕설을 받지 않으면 그 욕설은 어디로 돌아가느냐고 되물었습니다. 욕설을 받은 바 없으므로 그 욕설은 고스란히 욕설을 한 사람에게로 되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즉각적인 응수가 능사는 아닙니다. 욕설을 욕설로 되받아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당신이 욕설로 되받아치면 욕설의 오감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욕설과 거친 말은 발을 씻은 대야 속의 물과 같습니다. 누구는 그 물로 세수를 하거나 양치질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먼저 발을 씻은 대야 속의 그 물을 버려야 합니다. 큰 응수는 침묵에 있습니다. 침묵은 깊이와 수량을 잴 수 없습니다. 우치(愚痴)한 몇 마디의 말보다는 침묵이 더 아름답습니다. 침묵은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애써 당신이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알 만큼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불교 우화에 「자라와 고니」 얘기가 있습니다. 옛날에 자라가 호수에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해에는 가뭄이 혹독해 호수바닥이 말라붙었습니다. 자라는 제힘으로는 먹이가 있는 곳까지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때 아주 몸이 큰 고니가 호숫가에 내려앉았습니다. 자라는 애걸을 했습니다. 그 큰 날개로 자기를 어디든 좀 날라달라고. 먹이가 있는 곳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모쪼록 이곳만 벗어나게 해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고니는 마지못해 자라를 입에 물고 날아올랐습니다.

 

도시 위를 지나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자라는 공중에서 고니에게 연달아 질문을 해댔습니다. 여기가 도대체 어디냐고. 자라가 자꾸 물으니, 고니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대답했습니다. 대답을 하려고 입을 벌리는 서슬에 자라는 땅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자라는 땅에 떨어져 사람에게 잡아먹히고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어리석고 생각이 모자라서 입을 조심하지 않으면 자라의 신세가 되고 만다는 가르침을 주는 우화입니다.

 

입은 날카로운 도끼와 같아서 그 몸을 스스로 깬다고 했습니다. 입으로 여러가지 악한 말을 하면 도리어 그 도끼의 말로써 스스로 몸을 해치고 말 것입니다. 말을 할 때가 있는가 하면 침묵을 지켜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적절한 침묵은 우레와 같다고 하지 않았는지요.

 

동산의 능선처럼 완만하게 유연하게 우리는 말할 수 없을까요. 울타리에 한창 핀 장미꽃처럼 말하지 못할 바에야 수구(守口)를 생각해보면 어떨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