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외로움

10월의 마지막 밤에...

대지의 마음 2011. 10. 31. 21:23

 

1.

지금 이 시간.

8일을 넘긴 순천역광장 천막과 오늘 농성을 시작한 광주송정역 광장의 천막은 소란스러울 것이다.

 

솔직히 천막농성에 돌입하는 일은 쉽게 결정할만한 것은 아니었다.

주체적 조건을 충분히 헤아려서 방향을 잡는 것은 좋지만

그로 인해 우리 스스로가 무기력해지고 패배적인 감정에 자주 휩쓸리는 분위기 탓이겠다.

 

어쨌든 천막농성은 조직적 여건상 힘이 들지만

성과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간부들의 자신감이 회복되어감을 느끼고 있다.

 

 

2.

어제는 민주노총 광주본부 조합원 가족 체육대회가 있었다.

껄끄러운 자리였다.

물론 전체 조합원 수에 비한다면 7-8백명의 참여는 그리 많은 건 아니지만

10여명 정도 수준에서 참여한 우리들에겐 불편한 자리였다.

 

단순하게 참여한 인원만을 두고 따질 일은 아니다.

 

이런 형태의 상급조직이나 연대 단위 행사를 의무감으로만 받아들이고

조합원이 아닌 간부(그것도 간부들 중 일부)만의 사업으로만 이해한다는 점도 문제고....

 

연대 사업을 추진할 책임 주체로서의 호남본부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사실도 문제이고...

(광주의 6개 지부 중 어느 지부도 연대 사업을 책임지는 단위는 되지 못한다.

 오히려 목포기관차와 같이 지역적 대표성이 분명한 경우가  책임성도 높아진다.

 철도노조 광주본부가 있다면 이러한 연대 사업에 대한 책임감이 훨씬 높아질 것으로 생각된다.)

 

아마 이 모든 것의 배경에는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간부 활동가로서의 부족한 우리 모습이 있을 것이다.

여전히 말로만 '공장을 넘어 지역으로, 철도를 넘어서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를 이야기하지만

실제 자발적 소신으로 열정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만들지는 못하고 있다.

 

어쨌든 많은 간부들로부터 '철도는 동떨어진 조직 같다.' '철도는 자기들끼리만 하는 것 같다.' 는 등등의 비판(?)을 들어야 했다.

 

전남은 어떨까?

전북은 어떨까?

그리고, 목포는 지금도 잘하고 있을까?

 

비판으로 듣고 극복할 묘안을 찾아야 하는데

어제밤 내내 풀리지 않는 기분에 술만 들이켰다.

 

술은 깼지만 문제를 극복할 대안을 고민하는 일이 부담스럽다.

 

 

3.

몇 주나 되었을까?

아내와 심하게 다투었다.

 

현철이형 집들이에 다녀온 일이 발단이 되었다.

물론, 아내가 보내온 편지(광주전기지부 간부 카페에 올린 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부부간의 문제로 발단이 된 싸움은 아니였다.

 

이러저래 쌓인 문제점들이 쌓여서 나온 문제가 아니겠는가?

 

아내와 언성을 높여 다투던 날 밤.

눈물바람으로 서있던 태림의 모습이 지금도 아리다.

 

 

아내의 편지는 간혹 읽어보아도 좋을 듯 하다.

 

더보기

 현철형님 집들이 잘 다녀왔습니다. 
 새로 지은 집이 좋아 보이더군요. 직접 만드신 구들도 좋아보였습니다
 남편이 본부장 안하고 돈 좀 벌면 저도 그런 집 지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잠깐 했드랬습니다.
 맛있는 고기에 비눗방울 이모님의 편안한 웃음이 좋아 보였습니다. 
 그날 오후 내내 부엌에서 뒤뜰로 다니시면서 음식 나르느라 고생하셨다고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근데 마무리가 그래서 많이 속상하셨을 것 같아 이렇게 원인 제공자로서 사과의 글을 남깁니다.
 그건 제 남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날의 화는 제 남편을 향한 것이 아니었음을 밝히고 싶어서이기도 하고
 또 곰곰 따져보면 결국은 제 남편을 향한 것임을 절감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어서입니다
 제가 한 행동으로 인해 제 남편의 위신이 떨어졌을까요?
 그렇다면 철도사람들 본부장 잘못 뽑으신 거겠지요.
 제 성격이 이렇다는 거야 모두들 아시는 사실들이니 말입니다
 이건 단순히 성격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철도 노조 남자들은 보수적이다 가부장적이다 그들의 의식구조를 바꾸는건 어려운 일이다라는 말을 듣는 저인지라
 뭔가 저 나름의 해명같은 게 필요한 건 아닌가 해서 이렇게 글을 남기게 됩니다. 사실 지방본부 게시판에 올리고 싶은데 거기는 워낙 투쟁적인 구호나 지침들이 하달되는 곳이라 글을 올릴 곳을 찾다보니 여기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화는 남자들에게 났는데 
 그날 함께 오신 재필님 아내분과 성게씨 아내분 그리고 유리씨나 남편분의 충격이 엄청났을 것을 생각하면서
 이건 남자들한테 질렀는데 여자들이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들어버렸으니 뭔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혹 이 글을 읽는 남편분들께서는 제 미력한 마음을 아내분들에게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싫으면 안 하셔도 되구요
 
 제 행동에 남편이 당황했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나와 버린 저의 극단적 행동 또한 남들에게 이해받을 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행동도 갑작스럽게 돌출되는 것은 없습니다. 
 저는 여러번 남편에게 술에 대한 부분을 경고해왔고,
 그 술로 인한 언쟁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남편이 다니는 술자리에 가지 않으려 합니다 그 술로 인해 남편에게 극단적인 행동을 보였고, 남편은 저의 반응을 알기 때문에 더는 함께할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현철형님 댁에서 남편은 만취하지 않았습니다. 좋아하는 형님 댁에서 기분 좋게 취했고, 그냥 기분이 좋았다는 것도 압니다. 그날 제 행동은 누군가 한 한 마디 때문이었습니다.
 '갈려고 마음 먹었다가도 여편네가 가자고 하면 가기 싫어진다'고 했던 말입니다
 압니다.
 그 말을 남편이 한 것이 아님을 압니다
 하지만 제 귀에는 무수한 말들이 들려왔습니다. 여자들은 하나를 해주면 열을 요구해 그러니 아예 하지 않는 게 나아. 바쁘니 설거지 좀 해달라고 했다가 듣게 되던 '안해' 그걸로 끝나버리던 말. 아이들 밥 안챙기고 뭐 하냐는 듯한 남편의 화난 행동들. 아. 잔소리들. 귀찮다는 듯이 내 말을 잔소리로 듣던 남편의 행동들. 
 저는 자의식이 강한 사람이라 엄마의 잔소리를 무척이나 싫어했습니다. 그런 제가
 잔소리쟁이란 소리를 듣게 되더군요. 그건 제 책임일까요? 
 
 우린 집들이를 했습니다. 사람들은 기분 좋게 취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흘렀고, 정리를 해야 했습니다. 비눗방울 이모는 어린이집 원장으로 계셔서 주말에 해야할 일이 많은 분입니다. 정리하고 싶어했고, 누군가 그러셨죠. 여자 한마디에 술자리를 정리하는 병신소리를 남편에게 듣게 하려느냐고. 저는 그 말이 거슬렸지만 가만히 있었습니다. 여자의 말 한마디로 남자를 판단하는 마초적인 행태가 철도내에 팽배해 있을까요 과연. 
 
 저의 이성을 마비시켜 버린건 '여편네'라는 말이었습니다. 여편네
 아이들 간식과 음식들로 이틀에 한 번은 저는 바리바리 장본 것들을 들고 지고 다녀야 합니다.
 매일 아이들을 통학시키느라 아침을 챙기고 바쁘게 학교에 갑니다. 오후에는 학원일을 합니다.
 다시 저녁이면 아이들이 씻기는 했는 지,
 기침이라도 하게 되면 배즙이라도 먹여야 해서 배즙 주문을 해야할 지 말아야 할 지
 아이들 건강을 위해 과일이 떨어지지 않아야 하는데 
 이런건 제가 제일 못하는 것들이고 하고싶어하지도 않는 것들입니다.
 가정을 가졌고, 자식들이 있기 때문에 부득이 해야하는 것들이지요
 또 남편이 도와준다고 생각만하고 있어서 하지 않기 때문에 더불어 워낙에 크신 대의를 위해 노심초사하다 보니 
 그런 것들 쯤은 너무 작은 것들이라 마음 쓰시지 않기 때문에 떠 안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편네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가슴 아프게도 
 여편네가 되다 보니 
 그 여편네라는 말이 
 저의 중심을 건드리고 말더군요.
 
 그리고 저의 엄마는 여편네 였습니다.  없는 살림에 자식들 먹이겠다고 과일이며 채소며 쌀을 사들고 버스정류장에서 집까지 두손이 무너져라 짐을 들고 오던 엄마와 두손을 주머니에 넣고 앞서가던 아버지의 뒷모습이었습니다. 여편네 였던 어머니는 아이들을 씻기고 입히기 위해 논으로 밭으로 놉을 팔러 다녔고, 4남매에게 들어가는 것들이 감당이 안되어서 늘 마음 졸이며 살면서도 자식들에 대한 사랑으로 악으로 소리 바락바락 지르면서 모질게 살아오셨던 내 어머니는 여편네가 되고 싶지 않았지만 여편네가 되고 만 곱디 곱던 열여덟의 여자였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어머니는 여편네입니다. 아들이 '물' 한마디만 하면 곧바로 일어나 물을 가져오고, 맥주라고 말하면 곧바로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오는 어머니는 잠시 잠깐 마음 놓고 식사하는 것이 불편한 분이십니다. 저는 그 모습에 놀랐습니다. 어머니 몸에 배어버린 그 습성에 저는 충격을 받았지만 그것을 사랑과 관심으로 읽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마는 남편ㅇ 오래된 습성에 치가 떨립니다. 그것은 제 남편의 잘못이 아니라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제 좀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 음식이 맛있으니 집에 가서 먹자. 아들이 친구들 데려와 음식 먹는 모습만 보아도 어머니는 뿌듯해 하신다는 그런 생각은 이제 말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더불어 어머니께서 갈 때 마다 싸 주시는 음식에 대해서도 달리 생각을 해야할 때가 된 것은 아닌가 하고.   
 
 그리고 당신의 아내는 여편네일까요. 원래 여편네 였을까요. 아니면 여편네가 되었을까요. 아니면 당신이 여편네로 대하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남편과 살면서 극단적으로 싸울 때가 많았습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이해시키기가 얼마나 어려우며 그를 이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를 가장 사랑하는 남편이 뼈저리게 각인 시켜주더군요. 
 
 저는 가끔 주말에 가족들을 무시하고 잠을 자기도 하고, 남편의 아침을 챙겨주지 않고도 가책을 느끼지 않으며 남편이 선거운동을 하러 다니는데도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도 되었고,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게도 되었습니다. 물론 여편네 근성으로 불편한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를 위해 쉬는 건 남편을 덜 사랑해서도 아니고, 남편을 무시해서도 아니며, 오로지 제가 해야할 일이 너무 많아서 제가 감당할 선을 정해 놓은 것입니다. 제가 여편네가 아닌 남편과 동등한 무언가 꼭 하고 싶은 것을 가진 한 인간으로서 나를 지키는 행동입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남편이 대통령 선거를 나와도 저는 저의 자리에서 제가 해야할 일 제 직업과 관련되는 일, 아이들을 돌보는 일, 그리고 또 저를 한 존재로 만들어내는 어떤 일을 할 것입니다. 남편의 아내로서가 아닌, 그리고 우린 집에서 동등하게 남편과 아내로서 아니 사람과 사람으로서 부부간에 부모 자식간에 서로를 온전한 한 존재로 무엇을 기대하기 전에 서로를 가장 아끼며 상대가 어긋나는 길로 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서로를 존중할 것입니다. 
 
 저는 감히 권합니다. 아내를 아내로서가 아닌 나와 같은 노조조합원으로 보아 줄 것을. 내가 대의를 품듯 아내에게도 대의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대의를 존중받고 싶어한다는 것을
 그리고 제발 아내는 아내, 여편네이기 전에 나와 같은 한 사람이라는 것을 
 존중받고 싶다면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이 글이 제 행동으로 인해 의기소침해 있을 제 남편을 과연 위로나 해줄지 모르겠지만
 저는 알고 있고 고마워하고 있다는 말은 하고 싶습니다.
 남편이 노력하고 있고
 저를 존중하려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물론 오랜 시간 몸에 밴 습성을 버리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어서
 그것으로 인해 받는 나의 상처까지는 아직 보둠지 못해 속상할 때 많고 만족스럽지 않지만
 그가 노력하고 있고,
 온갖 번잡스러운 본부장직을 수행하는 와중에도 저를 한 사람으로 존중하려 한다는 것을
 그래서 그 모든 습성을 가진 남편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를 정말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글을 올린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의 대의를 위해 끊임없이 쉼없이 무던히도 자신을 괴롭히면서 분투하는 그를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하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