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께, 징허게 거시기허네” |
전남대 국어문화원, 전라도 대표말 가려뽑아 |
‘말이 통한다는 것’은 좋은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전제 조건이 된다. ‘친한 사이’는 대부분 ‘말이 통하는 사이’들을 이른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작은 공동체들은 대부분 ‘말의 통함’을 기본으로 해서 이루어진 것들이다.
‘전라도’라는 지역 공동체는 여느 지역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의(義)로 표상되는 호남정신, 예(藝)로 표상되는 남도정신, 공동체성을 대표하는 광주정신은 ‘전라도’의 대표적인 속성을 이룬다. ‘전라도적인 것’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는 것이 바로 ‘전라도 말’이다.
2011년은 1446년 한글이 반포된 지 565돌을 맞는 해이다. 또한 전남 민속문화의 해이기도 하다. 전남대학교 국어문화원(원장 서상준)은 전라도말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전라도 말의 보존, 전승과 국어문화의 발전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을 받아 <전라도 대표말 가려뽑기> 행사를 열었다. 주옥 같은 ‘전라도말들’이 모여들었다. 300여 개의 말들을 사용빈도를 고려하고, 문화적 의의와 현재적인 가치 등을 살폈다. ‘남도의 멋과 맛’, ‘정과 한’, ‘여유와 긍정의 가치’, ‘공동체성’, ‘역동성과 소통’을 주제로 가려 뽑았다.
남도의 멋과 맛을 담아낸 말로 귄, 게미, 오지다, 징하다 등이 꼽힌다. 문화예술 관련 행위나 작품 등이 격에 꼭 맞게 어울릴 때 ‘귄있다’는 말을 쓴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정이 들고 매력적인 인물에 보내는 최고의 찬사가 ‘귄있다’이다. 음식이 입에 맞고 맛있을 때 ‘게미있다’ ‘게미지다’를, 물질적 정신적 풍요로움을 느낄 때 흔히 ‘오지다’라는 표현을 쓴다. 또 한계를 뛰어 넘거나(긍정적), 도가 지나칠 때(부정적) ‘징하다’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산다.
정과 한을 주제로 한 말로 가심에피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옛날 어머니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었던 마음 통, 흉통’으로 아직도 잊지 않고 쓰는 이들이 있다. 안타까움을 나타내는 말로 ‘에돌허다(에도롭다)’, 대체로 부정적인 상황에서 ‘불쌍하다’는 말을 쓰지만 마음 쏠림과 울림을 포함하는 말로 ‘짠허다’를 많이 쓴다. 또 ‘고맙다’는 뜻을 담고 있지만 딱히 답례할 것도 없어 미안하다 의미를 담는 ‘아심찬허다’라는 전라도 말이 있다.
여유와 긍정의 가치가 담긴 표현으로 일을 할 때는 ‘싸목싸목’, 말을 할 때는 ‘조단조단’을 쓴다. ‘해찰’이라는 말도 즐겨 쓰는 전라도 말이다. ‘한눈팔기’가 쉽지 않은 속도의 시대에 자기성찰과 더불어 ‘해찰’의 여유가 꼭 필요하지 싶다. 상대의 말에 귀기울이고 상대의 말에 동의하고 있음을 ‘금매’, ‘하먼’ ‘긍께’ 같은 말로 드러내기도 한다. 부정적인 상황에서 상대의 말에 동의할 때는 ‘금매’, 긍정적인 상황에서 상대의 말에 동의할 때는 ‘하먼’, 그리고 어중간한 상황에서는 ‘긍께’라는 말을 곧잘 던진다.
공동체성이 드러나는 말로는 ‘거시기’가 대표적이다. “‘거기시’가 짠허게 ‘거기시’했담시롱.” “금매마시, ‘거시기’를 ‘거시기’했어야 ‘거기시’ 안혔겄어.” 이미 공유하는 일이나 정서를 깔고 있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구체적 언어 대신 쓰는 말이 거시기다. 한꾼에(항꾼에) 또한 공동체 정신을 대표하는 말이다. ‘겨우’라는 말과 통하지만 ‘겸손’의 의미를 담고 있는 ‘포도시’, 상대방의 소유나 행위에 대한 상찬의 뜻을 담은 ‘솔찬히(솔찬하다)’ 등도 공동성을 품은 말들이다.
전라도 사람들의 역동성과 소통을 표현하는 말들로는 기언치/기엉치/기엉코(끝까지, 기필코의 의미), 몽구리다(한 걸음 더 내딛기 위해서 몸은 ‘움추리고’, 마음은 ‘몽구린다’), 암시랑토 않다(특히 큰일을 당했을 때 스스로를 위안하고 마음을 다잡을 때 쓸 수 있는 최선의 말/ 타인에게는 용기를 주는 위로의 말)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런 말들은 전라도 사람의 굴곡진 삶을 표상하는 정한의 언어, 고된 세상살이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이어 주는 긍정의 언어,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는 공동체의 언어, 짬짬이 빚고 즐기는 남다른 풍류에서 찾은 멋과 여유의 언어를 대표한다. 언어를 가장 빛나게 하는 것은 격에 맞게, 많이 쓰는 것이다. 삶의 현장에서, 다양한 글쓰기에서, 문학판에서 이 말들이 제가 지닌 본래의 빛을 고스란히 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전남대학교 국어문화원>
전라도닷컴 기사
http://jeonlado.com/v3/detail.php?number=11421&thread=23r03r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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