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서며.. 그리고,
두 번이나 버스를 갈아타면서도...
삼남길 13코스를 걷고자 나선 걸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송산유원지에 내려서
12코스와 13코스가 나뉘어지는 운평마을까지 걸어가면서는 생각을 바꾸고 맙니다.
언제든 13코스는 걸을 수 있겠구나 싶은 마음에
왠지 발걸음을 내딛기 번거롭게 느껴지는(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12코스방향으로 출발합니다.
12코스를 왜 '평온길'이라 칭하는지는 잘 모릅니다.
걷고나면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서리라 추측해 봅니다.
지도처럼 추천하는 코스를 따라가면
'평온길'에 어울리는 정서적 흐름도 이어갈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그치만 난...
오늘...
거꾸로 거슬러 길을 걷습니다!
버스 19번을 제외한 나머지 버스들은 1시간 이상씩을 기다려야 하는 차들입니다.
운이 좋은 경우가 아니라면 그냥 19번 종점(송산유원지)에서 걸어오는 것이 빠릅니다.
버스 정류장 4-5 구간 정도를 걸어 운평정류소에 도착합니다.
마을은 20가구 정도가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마을 쪽으로 걸음을 내딛습니다.
전봇대에 걸린 삼남길 표지를 따라 우회전합니다.
논과 밭을 가로질러 다다른 곳은 운평제.
훨씬 많은 수량이 가득할 운평제가 지금은 둑을 높이는 공사를 하는 모양입니다.
포크레인 공사를 위해 수량을 줄이고 주변으로 온통 공사 팻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삼남길 안내표지마저 포크레인이 길을 막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운평제 건너편 길을 따르지 못하고 이동합니다.
물이 가득한 곳이라면 갈대의 운치가 훨씬 좋았을 듯 합니다.
밭 사이로 건너오니 삼남길 표지가 반겨줍니다.
이제 정말 삼남길 본 궤도를 따라갈 차례입니다.
좀처럼 인적이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홀로이 걷습니다.
귓가에는 차분한 음악들이 한곡 한곡 흘러 지나칩니다.
한가로움, 아니면 게으름을 즐기는 것도 사람에겐 강제해야 합니다.
자기를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
그런 사회를 우리가 만들었습니까?
웃습니다.
현장에 복귀한지 1달이 지나지 않았습니다.
운동하는 사람의 기본이 되어 있지 못해서인지 다만 몇 개월이라도 스스로를 챙기고 돌아보고 싶었습니다.
근데 그것마저 뭔가 변한 놈처럼 보이는 모양입니다.
어찌 그리 조급하답니까?
또 웃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지 말자고 생각합니다!
상념을 버리는 것도 오랜시간 상념하지 않으면 불가능할 만큼 인생이 피곤합니다.
'인간에게 있는 가장 큰 장점이 망각하는 것'이라는 말에 환호했었습니다.
돌이켜보건대 그렇지 않았으면 이미 생이 끝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시나마 생각을 버리자고 마음 먹습니다.
4킬로가 안되는 거리지만 이미 다리의 통증이 느껴집니다.
잠시 쉬어야합니다.
점심 식사로 여기고 싸온 주머니를 펼쳐봅니다.
사과를 꺼내 한 입 베어 뭅니다.
잠깐의 시간도 허락하기 싫다는 듯 아주머니들을 가득 실은 트럭이
길 옆에 엉덩이만 걸터 앉은 내 곁을 쏜살같이 달려갑니다.
길 옆에 앉은 불쌍한 객을 생각해서라도 속도를 낮추는 예의라도 있었어야 합니다.
...
먼지가 날려도 사과는 맛이 좋습니다.
다시 일어나 걷습니다.
평동저수지가 코 앞에 있습니다.
저수지는 구름이 내려앉은 약간 어두운 기운이 감돌면 좋았을텐데...
아니면 물안개가 아주 조금만 감돈다면 좋을텐데...
오늘은 바람이 불지만 좋은 햇살에 그저 평온할 뿐입니다.
저수지를 내려와 오른쪽으로 안내를 따라 걷습니다.
길을 가로질러 나주방향으로 향합니다.
버스정류장을 유심히 쳐다봅니다.
광주시내에선 찾아보기 힘든 귀한(?) 버스들입니다.
정류장 명칭은 '축산시험장'입니다.
주변에 축산시험장이 있는 모양입니다.
길을 건너 오르막길을 한참 걸으니 서광주 요금소가 눈에 들어옵니다.
화물 트럭을 제외하곤 좀체 차량 통행이 보이질 않습니다.
길을 건너 조용한 길을 걸으니 드디어 '축산시험장'이 보입니다.
그런데 왠지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건물 주변으로도 무슨 사정인지는 몰라도 역시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질 않습니다.
평탄한 길을 계속 걸어갑니다.
길 안내가 없어도 크게 헛갈릴 일이 없습니다.
꼭 필요할 때(?) 쯤 이면 길 안내가 나타나곤 해서 나름 믿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주변으로 축산 농가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축산시험장의 모습처럼 더러는 오래전에 버려둔 폐 농가도 있지만
상당히 많은 축산 농가들이 좌우로 들어서 있습니다.
대나무로 잘 짜여진 대문이 눈에 들어와 카메라에 담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경고 문구가 신경을 건드립니다.
도둑이 많아서 그러는 것인지..
대나무 대문에 경고성 문구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풍경입니다.
유곡리 1구 감정마을로 진입합니다.
역시 사람은 아무도 보이질 않습니다.
이 곳부터가 광주의 경계를 넘어 나주가 시작되는 곳일겝니다.
콘크리트 기둥의 오래된 정자에 앉아봅니다.
운치라곤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폼이 오히려 운치를 줍니다.
역설의 역설?
의도하지 않은 정서를 자아냅니다.
분명 역사가 있을터인데...
아픈 다리를 쉬었다 출발합니다.
마을이 끝날 쯤에 깔끔하게 지어진 건물 한 귀퉁이에 포스터가 한 장 보입니다.
나주농민회에서 붙인 영농발대식 알림 포스터입니다.
3월 29일 영산강 둔치 체육공원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쟁취! 동부팜한농 농업진출 반대! 은 농민들의 요구 사항을 정리한 구호이고...
'同心同力 : 마음을 모아 힘을 합친다' 는 올해 활동 방향으로 보입니다.
마을을 벗어나니 대나무 숲 옆으로 정겨운 길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마을을 에돌아 나오니 철길과 만납니다.
'어디를 가나 철길은 따라 다니는구나.' 하고 웃습니다.
열차를 운전하면서 지나다니던 철길 옆 길에 와 서 있을 줄이야.
시간은 12시를 조금 넘겼습니다.
경전선을 타고 와서 목포로 향하는 무궁화 열차가 곧 지나갈 시간일 듯 합니다.
배가 슬슬 고파오지만 노안역 방향으로 조금 더 걸어가기로 합니다.
삼거리로 나뉜 다리 근처에서 이정표를 찾습니다.
다리를 건너지 않고 옆으로 난 둑방길을 따라 가라고 안내합니다.
이제 지루한(?) 둑방길이 이어집니다.
둑방 옆 잡풀들에는 불을 놓았습니다.
다리는 단 한 곳도 건너지 않고 계속 둑방길을 걸으면 됩니다.
미나리밭 가에 자리한 막사에선 노부부가 점심 식사를 하십니다.
어색한 눈 인사를 주고 받고선 개에게 말을 걸어 봅니다.
삼남길 어디를 가도 개 짖는 소리는 따라 다닙니다.^^
미나리밭 건너편 철길로 드디어 열차가 지나갑니다.
안타깝게도 무궁화호 열차는 카메라에 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걸었을까?
철길과 나란히 둑방길을 따라 걷다가 아래로 교차해 건너편으로 옮겨갑니다.
여전히 지루한 둑방길이 이어집니다.
저 멀리 쉼터로 보이는 정자가 보입니다.
저기서 점심을 먹어야겠습니다.
노안역 방향에서 나오는 '노안누리길'이 이 곳 정자에서 삼남길과 교차합니다.
'노안누리길'은 또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로 이어질까?
들판 한 가운데에 자리한 쉼터에 올라섭니다.
간혹 차들이 쌩쌩 달려가지만 바람도 심하게 불지 않아 점심을 해결하기엔 딱입니다.
신발을 벗고 편하게 자리를 잡습니다.
운평마을에서 출발해 11.67km 를 걸어왔습니다.
점심은 컵라면과 밥, 반찬, 토마토 1개.
맛있는 식사가 시작됩니다.
따뜻한 국물의 라면과 밥을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들판을 바라보며 토마토를 먹습니다.
지나가는 차들이 창문을 내리고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보곤 하지만 게의치 않습니다.
훨씬 가벼워진 베낭을 메고 둑방길을 계속 걸어갑니다.
건너편에 노안역이 보입니다.
아마(?) 하루 2편의 열차는 서지 않을까 싶습니다.
역은 열차 이용객의 있고 없음으로만 따져서는 사라질 곳이 많습니다.
하지만, 노안역 주변의 주민들은 여전히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역이라는 공간이 교통을 이용하는 공간으로만 한정하지 말고
지역 사회의 삶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다른 의미의 공동체 공간으로 바라볼 때
역도 살고 지역도 사는 상생이 가능하지 않을까?
역을 바라보는 철학적 접근이라고 할까?
스웨덴 주거정책은 집을 공급하는 기능적인 면을 뛰어넘어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어떻게 만들고 사회통합을 이룰까 하는 철학적 관점이 우선되는 걸 보았습니다.
우리의 역 관련 정책도 그러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둑방길 끝자락에 거의 다다르자 아스팔트 길이 끝이 납니다.
얼마전에 자갈을 새로 깔아서 길을 정비한 듯 합니다.
자갈을 깔고 둑방의 잡풀을 태우는 와중에 삼남길 리본은 이렇게 버려졌습니다.
왠일인지 리본이 보이질 않아 맞는 길인지 확인할 길이 없었는데...
구석현교에 도착해 잠시 주저 앉습니다.
다리의 통증이 조금씩 심해지지만 잠시 앉었다 출발하면 훨씬 괜찮습니다.
아마도 앞으로도 여러날을 더 걸어야 익숙해질 듯 합니다.
괭이와 자루를 멘 젊은 총각이 앞질러 갑니다.
베낭을 메고 할 일 없이(?) 걷는 외지인이 의심스러운지 한참을 쳐다보더니 지나쳐 갑니다.
'정말 할 일이 없는 외지인이라네. ㅋㅋ.'
이제 몇 킬로 남지 않았습니다.
구석현교를 지나쳐오자 영산강 자전거길과 만납니다.
아이들과 자주 자전거로 지나쳤던 길인데 이렇게 연결되다니...
무척 반갑습니다.
담양댐까지 57km 이니 현재의 제 도보 수준으로는 2박 3일을 걸어야 하겠습니다.^^
자전거길 옆에 매달린 삼남길 리본을 찾으면서 걸어갑니다.
자전거길에 자가용도 앞서갑니다.
그 뒤를 자전거가 따라갑니다.
걷는 난 더 이상 따라가지 않고 자전거길과 헤어집니다.
신월마을회관을 지나칩니다.
주변에는 멋진 전원주택이 여기저기 지어져 있거나 짓고 있습니다.
아마 광주와 나주를 사이에 두고 전원주택을 짓기에 더 없이 좋은 입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멋집니다!
하지만 개는 멋지지 않습니다.
특이하게 덩치가 크고, 얼굴도 요상하게 생겨서 겁이 덜컥 날 정도입니다.
또 짖기는 어찌나 짖어대던디
'개 자식 같으니라고..'
이렇게 월림마을을 통과해...
KTX 지나는 철길을 다시 지나니 나주북초등학교 후문에 도착합니다.
나주북초등학교에서 나주여고까지만 걸어가면 오늘의 목적지인 정렬사 입구가 보일텐데...
통 어디로 가야할지를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 20분을 넘게 헤맵니다.
결국 북초등학교까지 들어갔다 내려와서야 길을 찾습니다.
반가운 리본이 꼭 필요할 땐 없고,
그리고선 나중에 나타나 -그것도 잘 보이는 곳에서- 바람에 날리고 있을까?
귀신이 곡할 노릇이구만...^^
도로를 따라 어린이집과 교회를 지나치자 좁다란 논밭 사잇길로 안내합니다.
이런 반전이 삼남길의 매력입니다.
조그만 흙계단을 올라서니 밭이 펼쳐지고 그 사이로 리본이 길을 알려줍니다.
과수원과 밭 사이를 뚫고 내려갑니다.
끝 자락 밭은 집을 짓기 위해 공사가 한창입니다.
큰 길로 내려서니 전봇대 이곳저곳에 붙은 길안내 표지가 눈에 확 들어옵니다.
건너편으론 동신대학교도 보입니다.
나주북초등학교 정문을 지납니다.
그러고 보니 저쪽 북초등학교 후문에서 이 곳 까지 학교를 돌아서 길을 찾아 온 것입니다.
나주북초등학교에서 나주여고까지 곧장 마을을 가로질러 갑니다.
마을이 끝나는 곳에서 어르신 두 분이 걸어 나오시는 좁다란 골목이 보입니다.
어랏, 찬찬히 살펴보니 리본이 매달려 있는 삼남길 구간입니다.
오래된 테니스장을 지나치도록 길을 잡았습니다.
풀로 우거져 잘 살펴야 테니스장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한참이나 테니스장의 잡풀들을 쳐다보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곳으로 길을 개척했을까?
풀이 우거진 길이 정말 마음에 듭니다.
아름다운 계단길을 올라서자 나주여고가 눈에 들어옵니다.
학교의 정문 안쪽을 가로지르도록 길이 나 있습니다.
학생들은 이 길이 삼남길이라는 사실을 알까?
저 멀리 경기도에서 부터 이어져 내려와 우리 학교 앞을 지나 해남 땅끝까지 이어지는 길의 한 부분임을 알까?
학교 앞에서만 나고 지나다니면 아무것도 아닌 길 한 부분이지만
저 멀리 경기도에서 해남 땅끝까지 이어진 길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이 길의 색다른 의미가 느껴질 것입니다.
학교를 나와 천주교 공원묘지를 지나자 대호제가 펼쳐집니다.
사진 속에서는 연꽃이 멋지게 피어 있던데 지금은 볼 수가 없습니다.
대호제를 지나치자 아파트와 상가들과 만납니다.
시간은 15시 19분.
점심 시간을 감안하더라도 다리 통증 때문에 자주 쉬었더니 비교적 많이 걸렸습니다.
그렇게 정렬사 입구에 위치한 12코스의 첫 출발지에 도착합니다.
다리는 무겁지만 가슴은 뿌듯합니다.
18.65km를 걸었으니 지도와 거의 일치합니다.
온 몸에 기분좋은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느낌입니다.
시원한 막걸리가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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