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외로움

다시 생각나는 막걸리의 추억

대지의 마음 2013. 4. 2. 11:32

 

비가 내린다.

흡족하게 내리는 봄비는 아니다.

하지만, 오락가락하는 비에 삼남길 11길을 걸어볼 욕심은 포기하고 말았다.

 

대신 가라앉은 분위기에 어울리는 몇 곡의 노래를 찾아 듣는다.

요즘 길을 걸으면 챙겨가는 막걸리를 생각하며 언젠가 올렸던 막걸리에 얽힌 추억담을 떠올렸다.

 

다시 읽어본다.

이광석이 부른 막걸리 한 사발이 잘 어울리는 노래인데..(재생되지 않는다!)

 

대신 백자의 기타 연주를 얻을 수 있었다.

 

막걸리 한 잔과 아버님, 그리고 대학 시절의 친구들을 떠올렸다.

양은 주전자와 막걸리통을 실은 짐발 자전거의 추억도..

 

 

2009년 포스팅했던 막걸리의 추억은 이렇다!

 

 

 

 

 


 

 

막걸리 한사발

 

어린 시절..

한쪽 구석에 자리한 구멍가게,

반대쪽엔 조그만 탁자 두 개가 비좁게 붙은 식당.

방 2개에 넘쳐나는 사람들

우리 집 모습이었다.

 

 

 

 

아침 일찍 큰 자전거에 실은

막걸리 통은 근처 주조장에서 방금 내온 것이었다.

학교가 쉬는 날이거나

학교를 파한 느즈막한 오후.

친구들은 양은주전자를 들고

부모들 심부름으로

우리 집 문턱을 넘나들었다.

 

그렇게 주전자 가득 담긴 막걸리 중

친구들 입 속으로 들어간 양도 상당하리라.(?)

 

 

손님이 나간 후

빈 자리에 남은 막걸리며 안주거리며

시키지도 않는 막걸리 잔 하나둘 나르며

일을 돕겠다는 핑계로

홀짝거리며 들이키는 맛이

기가 찼다.

 

어른들은 모르겠지 하지만

벌개진 얼굴에 쓰여진 흔적은 어쩔 수가 없겠지.

 

한번쯤 혼낼만도 하지만

어린 아들, 딸 불러놓고

막걸리 채운 냄비를 불가에 올리며

설탕 맛도 곁들이고

달걀도 풀어 넣는다.

 

동생은 좋다고 소리를 지르는데

생각해보면

어린 나이에 엄마 아빠가

술을 끓여 주는 것이

좋다고 지르는 환호성이었으니...

 

지금도 술을 잘 먹는 이유가 어디서 왔을까?

 

 

 

 

 

 

 

막걸리 두사발

 

대학에 합격했다고

집에 전화를 드렸더니

아버님 왈 "빨리 와라!"

"왜요?"

"파티해야지."

 

두어시간 걸려 도착한 집엔

진수성찬(?)에 술 까지 떡하니 있었다.

오라~

술 좋아하시는 아버지에게

이런 기쁨이 어디 있을까?

 

그렇게 입학한 대학에서

내가 배운 건 학문이 아니었고

하루 종일(조금 과장일까?) 막걸리 마시는

흥미에 푹 빠졌었다.

 

거기가

주점 '광장'!

이 학교를 다니는 모든 학생들이

주인 어르신을 부르길 '아버지', '어머니'하는 곳.

그냥 주인도 뭣도 없다.

들어가서 술 가져오고

안주가져오고 마시다 없으면

외상값이 빽빽이 적힌 노트 한 켠에

자랑스러운 동아리 이름.

적어주면 되고...

 

시도때도 없이 마시는 막걸리 문화는

'광장'에서만이 아니었다.

대강당 앞에서도 정문 앞이건

조금만이라도 앉아 있을 곳이 보이면

으레 막걸리가 함께 있었다.

 

대학 입학한 지 1년이 안되어 치르게 된 중간고사

그날도 '광장'에서 점심 라면과 함께 시작한 막걸리가

결국 3~4시를 넘기고 있었고..

시험을 보러 갈까 말까 하는 고민도

취해가는 술과 함께 무디어 지고 있었다.

친절한(?) 선배왈,

"시험은 꼭 봐야한다!"

"예!"

그리고 그곳에서 자연대까지 뛰었다.

알만한 사람은 아는 거리.

점심 라면과 버무려진 막걸리가 적절히 배합되고

이윽고

시험장 뒤 켠 문을 열고 들어선 젊은이.

시험을 위해 부리나케 뛰어온 그 젊은이의

헌신성이 돋보일 바로 그 순간.

자리에 앉으며 바닥에 쏟아내기 시작하는 건

오전 내내 담았던 막걸리와 라면 부스러기 안주들...

 

시험을 보기 위해 보인 성의 정도만 기억할까?

 

 

 

막걸리 세사발

 

지금은 하늘 나라에 계신 아버지.

술을 좋아하시는 거야 이미 적었고...

어느 정도 좋아하실까?

 

시골집에 내려가기 싫어하는 큰 아들에게

어느날 걸려온 전화.

 

"감나무 밭에 농약 좀 치자!, 이번 주말에 내려와 줄이나 잡아라!"

"예!"

 

일요일 오전,

트럭에 실린 장비들의 면면은

과연 감나무 밭에 농약을 할 준비들이었다.

이 쯤되면 일하는 분위기도 괜찮고..

 

부엌 저 쪽에서 터져나오는 실갱이

"안주가 그걸로 되겄소?" 어머님 말씀.

바라보니 조그만 접시에 담긴 고추와 된장.

그리고 큰 막걸리 두 통.

 

과연 그렇지..

자, 이제 출발해야지 하고 저수지 밑까지

올라가던 트럭이 잠시 멈추더니

콧노래 비슷한 소리를 내시던

아버님 왈,

"아이구, 농약병을 안 실고 왔구나!!"..ㅋㅋㅋㅋㅋㅋ...

 

그러면 그렇지.

농약치러 가도 농약병만한 막걸리 통은 실어도

농약병을 실지 않는 강인한 집착력!

그것이 아버님이셨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일이 20분일까, 30분일까

기억하기도 어려울 만큼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난 후

"쉬었다 하자!"

기다리고 기다리던 반가운 말씀.

 

당산나무 아래 연자방아 댓돌 위에 앉아서

고추 된장을 곁들여 부자 간에 나누는 막걸리 맛이라니..

 

아직도 난 그 당산나무 아래 불던

시원한 바람결을 느낄 수 있다.

 

 

 

[이제는 보기 흉하게 콘크리트로 둘러싸버린 당산나무. 다행히 연자방아 댓돌은 남아 있다!]

 

 

 

 

막걸리 한 사발

 

 

 

막걸리 한 사발 굵은 땀이 한 사발

우리들의 인생사도 한 사발

막걸리 한 사발 지난 세월이(별빛 담아서)

한 사발 우리들의 꿈 한 사발

 

뜨거운 가슴 이 가슴으로

자갈밭을 일구고 씨앗을 뿌리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면

어느새 굵은 열매가 열매가 열리네

 

썩은 땅일랑 갈아엎어야

어린 싹이 예쁘게 잘 자랄 수 있지

썩은 가지는 잘라버려야

높고 높은 나무로 잘 자랄 수 있지

 

나의 친구야 나의 벗들아

내가 가는 이 길을 너무 걱정하지마

세월이 가면 언젠간 너도

붉은 황토와 같은 내 마음 알아줄거야 

 

 

 

 

<막걸리 한 사발_백자의 기타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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