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토지'와 함께 보낸지 3개월이 되었다.
2003년에 구입해 이제는 하얀색 표지에 누런 빛이 도는 1~5권을 들었을 땐,
'토지'의 감동이 이렇게까지도 인상 깊게 남게될런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1권, 2권을 읽어내고서도 내용을 힘겹게 따라가고 있었을 땐 또 이 쯤이면 손을 놓곤 하던 버릇이 도진걸까? 걱정까지 들었었다.
하지만, 동료에게서 6권부터 21권까지 가방 가득 책을 빌리고선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권마다 마지막 장을 넘기고서 다음 책을 기다리기 아쉬운 마음에 두세권을 가방 속에 넣어두어야만 안심이 되고
이어지는 스토리에서 조금이라도 간격이 벌어질라치면 어딘가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18권과 19권...
21권! 이젠 이 책의 끝이 다가올수록 밀려오는 서운함에 오히려 속도를 줄여야 하는 딜레마라니..ㅜ.
3개월은 그렇게 흘러갔다.
무엇이 그렇게도 인상 깊은 기억을 남기고 책을 놓는 서운함까지 불러왔을까?
소박한 술상 앞에 앉아 마치 소설 속의 그들처럼 탁주 한 잔에 오래도록 그들을 불러내고 싶어진걸까?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 숱한 사람들의 삶 앞에서 난 또 얼마나 작아지는가?
혼자서라도 어떻게든 하동에 다녀오고 싶었는데 마침 '토지 문학 기행'이라는 멋진 모임을 만나 아이들과 함께 했다.
평사리 최참판댁은 소설 '토지'의 내용을 최대한 살려 구현해 놓은 만큼 모든 공간이 소설 속의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윤씨 부인의 안채, 별당아씨와 서희가 기거했던 별당, 조준구와 조병수의 뒤채, 최치수의 사랑채.. 사랑채에서 바라본 평사리 벌판.
행랑채와 고방, 뒷편 대나무 숲과 초당까지...
친절한 문화해설가의 설명은 집안 구석구석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전형적인 가을 하늘에 구름은 선명하게 드러났고 덥지 않은 날씨에 간간히 시원한 바람이 불어 즐거움이 더했다.
다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최참판댁이라는 물리적인 가옥에 대한 설명에 치우치다 보니 조금 딱딱하고 소설에서 받은 감동에 젖게 해주는 여운은 부족했다.
소설과 드라마 속의 인상적인 부분을 살려서 건물의 구조를 해설하였더라면 훨씬 살아있는 해설이 될 수 있었을텐데...
최치수가 기거한 사랑채에서 바라본 평사리 들판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저 풍요롭고 너른 들판인데다 강과 산과 바다가 접한 지리적 환경 때문에 인심도 좋고 그나마 풍요로운 삶을 영위했다고만 볼 수 있을까?
안채에서 중문을 넘어 구천이의 목소리를 듣고 자식임을 직감하는 윤씨 부인의 가슴 아픈 모습을 안채 마당에서 떠올릴 수가 없었을까?
행랑채 앞 너른 마당에서 타작마당이 열리거나 농악이 펼쳐져 수확의 기쁨을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을 상상하면 또 어땠을까?
사당 뒷편 대나무 숲을 오고 가던 사람들의 소리를 들으려 하는 건 어땠을까?
1~2칸짜리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소작인들과 머슴들의 초가집 마루에서 소박한 탁주 한 잔을 경험하게 했으면 어땠을까?
투박하고 정감어린 사투리에 빠져들고 싶은 독자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건들여줄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이런 해설을 만날 수는 있는걸까? ㅋㅋ)
그럼에도,
최참판댁 건물이라는 외형에 숨결을 불어 넣은 농악 마당, 직접 방문객을 맞아주시며 사랑채 마루에서 함께 평사리 들판을 바라보게 도와주셨던 멋진 수염의 어르신은 우리에게 행복한 기억을 주었다.
[덧붙여]
기행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막걸리 몇 잔을 마셨다.
술도 깰 겸 아이들과 상당한 거리를 밤늦도록 함께 걸었다.
아이들과 걷는 길은 행복하다.
길 위에선 우린 늘 여유있고 '걸음'을 즐길 줄 안다.
시간의 제약을 벗어난 걸음.
수 차례의 부대낌이 우리에게 준 교훈이다.
아들 아이는 '아빠, 담배 3일에 1갑 정도만 피우면 좋겠다.'고 했고,
난 '그래'라고 대답했다.
기억이 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왜 소설 속 몇 장면을 사진에 담았는지는 하나하나 읽어보면 떠오를지 모르겠다.
-아마도 술 생각이 나게하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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