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 그리워

[북유럽2]연대와 협력 속에 경쟁하는 나라, 노르웨이·스웨덴 방문 돌아보기

대지의 마음 2015. 3. 15. 19:33



연대와 협력 속에 경쟁하는 두 나라,

노르웨이와 스웨덴 교류 방문 돌아보기

 

 

매년 삶의 질순위에서 최선두를 다투는 나라가 있다. 높은 세금 부담으로 유명한 나라. 국가가 주도하는 보편적 복지가 노동조합과 노동자 정당의 주도 아래 오랜 역사적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고 발전해온 나라. 바로 20세기 중반 이후 가장 모범적인 복지국가를 실현시킨 것으로 평가받는 북유럽국가, ‘노르웨이와 스웨덴이다. 인접한 두 나라는 오랜 교류를 통해 연대하고 협력하지만 미묘한 경쟁의 심리도 품고 있었다.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두 나라의 모습을 돌아보며 교류 방문의 기억을 되살려본다.



두 나라는 인구에 비하면 비교적 넓은 면적의 땅을 보유하지만 추운 날씨와 험한 지리의 영향으로 대다수가 남쪽에 밀집되어 살고 있다철도 역시 북쪽으로 향하는 주요 간선을 제외하곤 남부지역과 수도인 오슬로와 스톡홀름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물류 거점인 항만과 이어진다.



노르웨이와 스웨덴그들 사회의 가장 큰 유사점은 번화한 도심에서부터 쉽게 발견된다스웨덴 스톡홀름과 노르웨이 오슬로는 모두 중심부의 중앙역을 중심으로 멀지 않은 곳에 의회와 시청 등 주요 국가 기능이 집중되어 있고그 심장부에 노동자들의 대표 조직인 노총(LO)이 자리하고 있다.



<스웨덴 사회를 이끄는 스웨덴 생산직 노총(LO)>



<스웨덴 초기 노동운동의 아버지, 아우구스트 팔름의 동상. 스웨덴 LO 앞에 자리하고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 중앙역에서 멀지 않은 광장(Norra Bantorget)엔 초기 노동운동의 지도자인 아우구스트 팔름을 비롯한 지도자들과 노동자들의 투쟁을 형상화한 조형물로 채워져 있다. 바로 이 광장에 사회민주당과 함께 스웨덴 사회를 이끌어온 스웨덴노총(LO)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주변도 노동조합 관련 건물들이 즐비하다




 <스톡홀름 중앙역 인근의 공원, 노동운동 지도자와 노동자들의 투쟁을 담은 조형물 그리고 노동조합 관련 건물들의 모습>





노르웨이도 마찬가지다. 매년 노동절 기념 집회가 열리는 시내 광장 전면엔 노르웨이 노동당과 LO가 사이좋게 이웃하고 있다. 70%이상의 노동자를 조직한 노동조합, 그들이 만든 사회민주당(스웨덴)과 노동당(노르웨이)을 통해 노동자의 권익을 실현하고 세상을 주도하는 두 나라. 그들의 사회적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1



<매년 5.1 절 집회가 열리는 광장. 양 옆으로 노르웨이 노총(LO)과 노르웨이 노동당이 이웃하고 있다.>




<점심 식사를 위해 들른 광장 옆 식당의 신문. 제목이 '계급투쟁'>




삶의 곳곳에서 발견되는 노동조합은 노동의 소중함을 사회적으로 공유하는데 기여한다. 노동존중, 인간존중의 사회 분위기는 우리가 방문한 철도 현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오슬로 화물차량기지에서 화물열차에 투입되는 다양한 기관차에 탑승할 기회가 있었다. 2년 동안 임대한 기관차의 전면 유리창엔 그들의 자긍심이 담긴 노르웨이기관사노조(NLF) 스티커가 부착되어 있었다



<기관차 전면에 부착된 노르웨이기관사노조(NLF) 스티커>


차량에 탑재된 각종 운전보안장치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것들이지만 독특한 점도 있었다. 춥고 폭설이 많은 험준한 지형의 노르웨이 철도 특성이 반영된 많은 편의 시설들이었다. 간단한 조리 공간과 세면대, 라디오 겸용  CD 플레이어와 비상식량까지... 조금 낯선 풍경에 놀라고 있을 때 필요 물품 종류와 배치에 있어서 뭔가 특별한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운전실과 기계실까지 기관차에 실린 물품은 무엇보다 운전을 책임지는 승무원의 입장에서 따져보고 업무 흐름에 맞는 동선을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된 것이었다. 그러니까 노동자들의 작업 환경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 원칙! 바로 그것이었다.




<노르웨이 기관차에 실린 비상식량 박스>



비상식량도 우리의 관심을 모았다. 교류 방문 1주일 전에 있었던 무궁화호 열차 사고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상구배 선상에 정차한 무궁화호 열차의 승객은 5시간을 넘겨 버스를 이용해 모두 귀가했고, 견인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7시간 40분이었다. 불편을 겪은 승객들을 우선 조치하는 것이야 당연한 철도원의 임무이겠지만 노르웨이 기관차에서 발견한 비상식량을 보고서야 해당 열차 승무원들은 7시간 40분 동안 허기진 몸을 어떻게 간수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우리는 얼마나 우리의 노동과 작업환경에 인간존중의 관점으로 주목하고 있을까?’ 반성하게 한다.


철도에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 사상 사고에 처한 기관사는 단 1미터도 움직일 수 없고 곧바로 가까운 기지에서 심리 상담을 위한 상담사와 대체기관사가 택시로 출발한다. 사고 처리와 당사자의 심리적 안정까지 아우르는 초기 대응은 이후 이어질 사고 당사자의 정신적 피폐함을 극복할 좋은 방법이다. 사고 처리에만 집중된 우리와는 사고 당사자의 입장을 존중했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여준다.


 

<노르웨이기관사노조(NLF) 간부들의 비상 매뉴얼 책자>



사회적 위상에 걸맞은 노동조합의 책임과 역할도 눈에 띈다. 안전한 열차 운행을 책임지는 주체로서 존중되는 것이다. 노르웨이기관사노조(NLF)의 간부들에게 지급되는 비상 매뉴얼은 사상 사고에 처한 기관사가 가장 먼저 연락을 취해야 할 대상으로 노동조합 간부를 꼽고 있다. 이 매뉴얼은 노사단체협약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가 책임추궁에서 원인규명으로 사고를 다루는 근본적 태도 변화를 추동하는 힘이 되었으리라. 우리나라에선 억지스러운 지적만 남발해 원망의 대상이 된 승무지도도 감시와 통제 목적이 아니라고 밝히는 노르웨이 현장 팀장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와 비교하면 어떨까? 심리 상담을 위한 상담사와 대체기관사 파견과 같은 수습 매뉴얼을 만들고 실천하기까지도 쉽지 않은 과정이겠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해결될까? 이어지는 우리의 질문이 끔찍한 현실을 대변한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서는 열차 사상사고가 발생해 정차시분이 길어지면 여객들로부터 항의를 듣지 않는가?’ 하지만, 돌아온 답은 사람이 죽었는데 그럴 수 있나?’. 우리마저도 냉혹한 현실 속에서 감성마저 무뎌진 것일까? 오이스틴과 발레는 한 명의 죽음에도 온 사회가 함께 슬퍼하고 아픔을 나눈다고 말한다. 그리고 원인을 밝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세월호 사고의 진상을 밝히자는데 침체된 경제가 도마에 올랐던 한국의 사정을 전하자 그들은 왜 경제가 죽어요?’라고 되묻는다.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 허탈하고 부끄러울 뿐이다.

 

두 나라의 유사점은 사업장 곳곳의 품격 있는 휴게실과 노동조합 공간들, 활동 모습만이 아니라 법·제도에서도 발견된다. 특히, 단체교섭제도와 관련해선 매우 유사하다. 노사간 체결한 단체협약이 유효한 기간엔 평화의무조항을 지켜야 하지만 새로운 단협을 체결하는 거라면 어떠한 내용이든 불법으로 규정할 수 없다. 물론 유효기간 내라도 정치파업은 언제든지 합법이라는 사실. 조금만 생각하면 이해되는 아주 상식적인 이야기에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노르웨이 오슬로 도시교통을 책임지는 노르웨이지방정부노조 오슬로지역지부 스포르바이엔 간담회>



이렇게 유사한 모습의 두 나라 사회엔 상당히 다른 차이점도 드러난다. 철도 산업의 변화된 현실은 확연하게 다른 모습이다. NSB(노르웨이 국철)가 철도 수송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지하철과 트램, 버스 등 통합적 도시교통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노르웨이가 이제 본격적으로 자유화와 경쟁 시도에 직면하고 있는 반면 스웨덴의 철도 분할은 역사가 깊다. 일찍이 상하 분리와 민영화 추진으로 철도 시스템의 일대 변화를 맞아 현재는 그들 스스로도 고개를 내저을 만큼 복잡한 시스템으로 변모했다.

 

이러한 조건은 민영화경쟁을 바라보는 시각에서의 차이를 부른다. 노르웨이 철도노동자들이 민영화에 대한 우리의 문제의식에 쉽게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면 스웨덴 철도노동자들은 민영화에 왜 반대하는가?’라고 묻는다. 분할된 시스템으로 인한 품질 저하와 비효율에 직면한 스웨덴서비스통신노조(SEKO)재규제화라는 새로운 원칙을 수립해 품질, 환경, 노동조건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여전히 민영화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다.



 

 <스웨덴 SEKO 철도분과 간부들과의 간담회>



그렇다면 스웨덴 철도노동자들의 태도는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 민영화가 경쟁력과 효율성의 측면에서 충분한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인가? SEKO의 간부들과 나눈 대화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산별교섭을 통한 평등한 임금, 교육과 육아, 노후에 대한 사회적 보장, 높은 수준의 실업급여와 재취업교육 등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등이 민영화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상쇄해주고 있는 것. , 국가와 노동조합의 역할을 바탕으로 사회적 통제가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경쟁력과 효율이 발생했다고 하는 것은 실제로는 운영 주체가 민영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전체 사회가 나누어 감당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성공사례로 회자되는 스웨덴의 민영화는 바로 이런 사회구조와 환경에 종합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산별교섭구조에서 이탈하거나 포괄하지 못하는 민영 기업에서 꾸준히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니 통제 가능한 자본이란 애초부터 존재할 수 없음을 증명하는 사례로 더 적절한 건 아닐까?



비슷한 듯 다른 사회,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역사를 마지막으로 살펴보자. 2차 대전 당시 나치의 침공을 받은 노르웨이와 중립을 표방하며 빗겨간 스웨덴. 그 역사의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 육안으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노르웨이 노동당과 LO가 자리한 광장 주변이다. 유달리 주변과 어울리지 못해 쉽게 구분되는 건물은 나치 침공 당시 노르웨이 통치에 활용된 건물이었다. 두 나라에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노르웨이 노동당 건너편에 위치한 2차대전 당시 나치의 건물. 색깔이 달라서 일까 보는 순간 확연히 구분된다.>



19404, 히틀러가 덴마크, 노르웨이를 침공했다. 사실 히틀러의 침공에 깜짝 놀란 건 영국이었다. 스웨덴에서 생산되는 주요 광물의 선적이 겨울 내내 노르웨이 항구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중립국 노르웨이는 독일 군수산업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1939년 말 처칠은 노르웨이 항구를 기습 점령해 독일의 수송 경로를 차단하자고 제안하기도 했지만, 독일 해군대장 에리히 레더의 제안에 발 빠르게 움직인 독일이 노르웨이 항구를 선제 장악했기 때문이다.2 이후 나치에 저항한 노르웨이 레지스탕스 운동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막스 마누스>에 잘 담겨있다.

 

스웨덴은 2차 대전 중 중립국임을 자처하였으나 나치 독일과 연합국에 철광석을 공급하며 이익을 챙겼고, 나치의 덴마크 점령을 묵인함과 동시에 노르웨이를 침략하기 위해 원정하는 길도 내주어 노르웨이 점령에 도움이 되었다. 결국 나치 독일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셈인데, 이는 현재까지도 많은 논란 속에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나치에 저항한 레지스탕스의 역사를 새긴 노르웨이와 중립으로 나치의 존재를 인정해 준 스웨덴. 패배할지라도 저항을 간직한 역사와 아픈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역사를 안고 있는 사회! 서로 다른 역사적 경험은 서로 다른 흔적으로 현재까지 이어져 면면히 남아 있을 것이다. 그들 사이에 미묘한 긴장이 흐른다. NLF의 오이스틴은 ‘<중립>은 한 번도 <중립>일 때가 없었다!’며 비판한다. 버릇처럼 중립으로 수렴되고, ‘중립객관으로 오해하는 우리 자신을 따끔하게 일깨우는 지적이다.



<스웨덴 SEKO와의 단체협약 체결을 알리는 선술집 현관의 스티커들>



이렇듯 비슷한 듯 묘한 경쟁심을 간직한 두 나라 노동조합은 조직체계상의 차이도 보인다. 노르웨이 철도가 여러 회사의 기관사를 하나로 묶은 기관사노조로 분리된 반면 스웨덴은 보다 큰 산별노조로 조직되어 있다. 더 활발한 조합 활동이 이뤄진다는 점은 인정하나 사회정치적 영향력이 축소된다는 스웨덴 SEKO 발레의 지적에 노르웨이 NLF의 오이스틴도 고개를 끄덕인다.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잃지 않으며 연대와 협력으로 하나가 된다. 그들이 보여준 선의의 경쟁이야말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노동이 존중받는 따뜻하고 평등한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를 이루어온 저력이 아닐까도 싶다. 스웨덴 선술집에서 짙은 농담과 활달한 웃음을 주고받는 그들을 우린 부러운 눈으로 오래도록 지켜봤다. 교류 방문의 기억을 되살리는 지금도 당시를 떠올리며 잔잔한 웃음이 머금어진다. 선술집에서 맛본 샤프란맥주의 향기도...



<샤프란 향기가 느껴진다. 스웨덴 선술집의 샤프란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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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노르웨이, 스웨덴 교류방문 보고서에 실릴 소감문입니다.




  1. 2010년 통계에 의하면 스웨덴의 노조조직률은 71%를 나타내 80%를 넘나들었던 수치가 다소 하락된 모습을 보임. 노르웨이는 50~60% 정도의 조직률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음. 높은 조직률과 아울러 노동조합의 사회적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높은 단체협약 적용률이다. 노동조합이 체결한 단체협약이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만큼 노동조합의 위상과 역할을 잘 알 수 있음. [본문으로]
  2. 2차대전 중의 노르웨이와 스웨덴 이야기는 '유럽사 산책'을 참고하였음.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