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외로움

특별한 선물_한지로 만든 시집

대지의 마음 2011. 2. 12. 11:16

 

 

['사람만이 희망이다' 라고 앞과 뒤표지에 적힌 한지로 직접 만든 책!]

 

 

좋은 선물을 하나 받았다.

아니, 아주 '특별한' 선물이라는 표현이 어울리겠다.

 

선거 출마 이후 약 보름 정도 바쁘게 보내는 동안

이런 나와 동료 한 명을 위해

그 만큼의 시간 동안 좋은 시를 모으고, 한지를 잘라 붙이고 결국 책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선거가 끝나면 무엇을 선물해줄까 오랫동안 고민했으리라.

 

2년 동안 노동조합의 대표자로서 살아가는 내내

잃지 않고, 변치 않고 마음에 담아 두었으면 싶은 내용은 뭘까?

 

사람에 대해 무디어지고, 피곤을 호소할 때

몸은 피곤해도 얼굴에 흐뭇한 미소 머금으며 순간순간을 차분하고 현명하게 보내는 방법은 뭘까?

 

매일 한 편씩 읽으며 맞이하는 아침은 얼마나 상쾌할까?

 

<첫마음>의 열정 간직하라  준 <첫마음>님의 선물이 고맙다.

 

 

 

선물받은 시집에서 시 몇 편을 옮겨온다.

연탄을 소재로 한 안도현의 시가 상당히 많다. 


 

 

연탄 한 장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을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을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연탄 한 장_안도현 작사, 강종철 작곡, 안치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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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반쯤 깨진 연탄

 

안도현

 

언젠가는 나는 활활 타오르고 싶은 것이다.

나를 끝 닿는 데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 위에

지금은 인정머리없이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

아랫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 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 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 몸을 벌겋게 달아오르기를

나도 느껴 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눈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침침한지 손을 뻗어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하여 푸근한 잠을 자는 처녀의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슬금 만져도 보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