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남길 6코스(다산수련원 앞~영랑생가)를 걷기 위해 강진에 다녀옵니다.
강진터미널 부근 멀지 않은 곳에 다산 정약용의 발자취가 깃든 사의재(四宜齋)가 있다고 하니 찾아가 보기로 합니다.
사의재 가는 길에 강진읍성의 옛 동문이 있었던 터가 나옵니다.
강진에서 나고 자란 영랑의 시 '문허진 성터'도 보입니다.
이 동문터 바로 옆에 사의재가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인 강진에 17일만에 도착했을 때 아무도 그를 반기지 않았습니다.
정조 임금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지만 정조 사후에 노론 벽파에 의해 하루 아침에 대역죄인이 되어 왔으니 누가 반겨주었겠습니까?
이런 그를 불쌍히 여겨 거처를 내준 이가 바로 이 동문 밖 주막집 노파였습니다.
동문 밖 주막집이라 '東門買飯家'라고도 부릅니다.
주막집 주모는 다산 정약용에게 집 한 칸을 내주고 낙담하지 말고 아이들이라도 가르쳐야 하지 않겠냐고 힘을 줍니다.
한승원이 쓴 소설 '다산'에는 주모의 무학의 통찰(?)에 크게 깨달음을 얻는 정약용의 모습도 그려집니다.
비록 밥과 술을 파는 주모에 불과했지만 밑바닥 삶의 깊은 지혜를 보여줍니다.
다산 정약용은 주막집 방 한 칸을 빌려서 사의재라 이름짓고 제자들을 길러냅니다.
사의재는 생각, 용모, 언어, 행동 등 4가지를 올바르게 하는 이가 거처하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이른 아침에 찾아온터라 출입문은 잠겨 있습니다.
뒤로 돌아서 문을 밀고 들어가 마당을 걸어봅니다.
정갈하고 깔끔한 마당 뒤로 사의재가 눈에 들어옵니다.
뒷편에 이르니 동문매반가라는 명판이 보입니다.
이 곳은 지금도 간단한 메뉴 몇 가지로 주막을 열고 있습니다.
추어탕과 아욱국, 동동주 등 간단한 차림이 준비됩니다.
아욱국은 다산의 제자 황상과의 인연이 깃든 음식입니다.
제자 황상은 다산의 형 정약전으로부터 '과연 다산의 제자구나'라고 할 정도로 뛰어난 학자였다고 합니다.
황상은 스승 다산의 권유에도 깊은 산속에 들어가 청빈한 생활을 하였으며
스승이 찾아와도 특별히 다른 음식을 마련하지 않고 자신이 먹고 사는 그대로 '조밥에 아욱국'을 차려냈다고 전해집니다.
다산은 이에 대한 답례로 <집 앞 남새밭의 이슬 젖은 아욱을 아침에 꺾고 동쪽 골짜기의 누런 기장을 밤에 찧는다.>는 시를 남겼습니다.
(전라도닷컴 5월호)
다산의 흔적이 남겨진 사의재를 재현하면서
동문 밖 주막을 제자와의 인연이 깃든 차림표로 구성하다니...
역사와 추억, 그리고 현재가 함께 어우러진 멋진 발상입니다.
텃밭 옆엔 사의재를 다룬 詩 도 전시하였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소설 '다산'에는 이 곳 사의재 방에 전시된 거문고를 매개로 이 집 딸아이와의 애틋한 인연을 다루고 있습니다.
또, 일설에는 주모의 딸과의 사이에서 딸아이를 낳았다고도 합니다.('다산의 후반생'_돌베개)
무엇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18년간의 긴 세월 동안 엄청난 학문적 업적이 가능하려면
정말 많은 이들의 후원이 없고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역사를 현재에 재치있게 살려내고 주변을 정갈하게 정돈한 사의재.
이른 아침이라 맛보지 못한 아욱국과 동동주가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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