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 그리워

[삼남길 6코스]다산수련원 앞에서 영랑생가까지 12.1km

대지의 마음 2013. 6. 12. 10:57

 

 

 

다산수련원 입구에서 삼남길 안내도를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분명 여기 어디쯤일텐데 하면서 오르락내리락 해보아도 도무지 시작점을 찾기 어렵습니다.

 

조금 마음의 여유를 찾으려고 길가에 앉아서 쉬고 난 뒤에야 비로소 광고 프랑카드 뒷편에 숨겨진 안내도를 찾아냅니다.ㅜㅜ.

아마 삼남길 6코스를 처음 걷는 이라면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광고 프랑카드를 막을 수는 없을테고, 안내표지판을 옮기는 게 나을 듯 합니다.)

 

어쨌든 삼남길 6코스를 걷습니다.

 

다산수련원 앞에서 다산초당, 백련사을 거쳐 춘곡마을, 기룡마을, 초동마을 등을 거쳐

강진읍내의 영랑생가까지 12km 구간입니다.

 

 

 

 

 

언젠가 행사 참석을 위해 찾아온 적이 있었던 다산수련원이 보입니다.

그 때 그 장소가 여기란 사실에 새삼 놀라는 걸 보면 정말 무관심한 발걸음이었나 봅니다.

 

 

 

 

 

 

 

 

다산초당은 지금은 '草堂'은 아닙니다.

 

강진에 유배된 다산이 이 곳 다산초옥으로 옮긴 게 1808년 봄이라고 합니다.

강진으로 귀양 온 뒤 동문매반가의 뒷방에서 4년, 보은산방에서 2년, 그리고 제자 이학래의 집에서 2년.

모두 8년 동안 이곳저곳을 옮겨다닌 후에 제대로 된 곳에 거처하게 됩니다.

 

 

[서암]

 

초당 입구 쪽이 경사가 심해 흙이 쓸려 내려가므로 비탈을 아홉 계단으로 평평하게 만들어 층마다 무와 부추, 파와 배추,

쑥갓, 가지 등을 심었고 남은 빈터에는 잡초를 뽑고 명아주와 비름, 구기자를 심었다고 합니다.

 

 

 

[다산초당]

 

 

다음으로  초당 동편에 있는 연못을 넓히고 주변에 단풍나무와 느릅나무를 심었습니다.

초당 위쪽에 샘물을 파서 홈통으로 이어 연못에 물이 들어오게 하고, 혜장선사는 연꽃을 가져와 못에 심었습니다.

 

 

 

 

 

丁石 두 글자를 바위에 새기고, 집 뒤편에 모래땅을 파서 석천이라는 우물을 만들었습니다.

굽지 않은 벽돌과 돌로 차 부뚜막을 만들어 차를 준비합니다.

 

 

 

 

[석천]

 

18명의 제자들이 공부할 초당을 손보고 장서 2천여 권과 함께 자신이 기거할 동암을 지었습니다.

8년만에 꿈을 이룬 다산은 힘든 줄도 몰랐다고 합니다.

 

 

[동암]

 

 

 

해남 윤씨 가족은 이 곳 초당을 다산에게 내어주고 수발을 들어주고 어려울 때마다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6백여권의 경이적인 저술이 가능했고 실학의 산실로서 다산학단을 낳은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상은 '다산의 후반생' 을 참고하여 다시 적었습니다.)

 

 

 

돌베개 출판사에서 펴낸 '다산의 후반생'에는 다산이 초당에 새로 옮겨와 이 곳을 가꾸는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책 속에서 만났던 다산의 흔적이 직접 눈 앞에 펼쳐져 생생하게 전해져 옵니다.

 

초당 곳곳에 서 있는 안내판 속 딱딱한 해설보다

마치 소설처럼 다산이 초당을 가꾸는 모습을 옮겨 놓았더라면 훨씬 이해도 쉽고 좋았겠습니다.

 

 

 

 

 

다산초당 동편에 있는 동암을 지나자 백련사의 혜장 스님과 다산이 서로를 만나러 오가던 오솔길을 만납니다.

아름다운 숲길로 이름이 나 있는 곳입니다.

 

 

 

 

 

다산과 혜장이 없을 때는 이 길도 없었을 겁니다.

소설 '다산'에는 혜장 스님이 주역에 아주 능통해 스님들에게 주역을 가르치는 사연이 매우 유쾌하게 등장합니다.

그런 혜장 스님도 다산을 만나고선 스승으로 모시고 이 구불구불한 길을 오가며 기쁨의 콧노래를 불렀습니다.

 

당시에는 '오솔길'에 어울릴 만큼 겨우 한 사람이 다닐 만한 좁은 길이었습니다.

백련사로 이어지는 이 길을 아는 이도 많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오솔길'이라고 하기엔 비교적 넓은 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의 구불구불하고 호젓한 분위기는 여전합니다.

주변에 널리 자라는 야생차의 풍경도 변함이 없습니다.

 

 

 

 

해월루에서 강진만을 바라봅니다.

이 곳에서 제주까지 이어지는 뱃길이 있었다고 하니 멀리 흑산도(우이도)에 있는 형(정약전)이 그리울 때면

다산도 강진만을 바로보았을 겁니다.

 

이른 아침이라 안개가 여전합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만덕산 백련사에 도착합니다.

만덕산은 야생차가 풍성하게 자란다 하여 '다산'이라고도 합니다.

 

 

 

 

삼남길에서 만난 대부분의 개들은 반갑든 경계하든 일단 짖고 으르렁대기 일쑤였는데...

백련사 입구의 견공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듯이 아무런 동요도 없이 쳐다보기만 합니다.

 

절의 고즈넉함 만큼 개도 차분합니다.^^

 

 

 

 

백련사 경내를 돌아보면서 만덕산을 바라봅니다.

푸근한 산과 어우러진 절의 지붕이 멋집니다.

 

 

 

 

백련사 사적비를 지나 동백나무 군락을 이룬 숲길로 접어듭니다.

아쉽지만 1,500그루 동백나무가 멋지게 꽃을 피운 장면도, 숲 바닥 전체가 붉은 꽃망울이 낙화한 멋진 광경도 볼 수는 없습니다.

 

사적비에도 '아름다운 숲'이라고 기록되어 있다니

백련사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동백나무 밑으로 부도탑들을 보면 오래된 역사의 기운이 한껏 느껴집니다.

 

동백나무는 백련사 입구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백련사 입구 주차장에서 베낭을 내려두고 잠시 쉬기로 합니다.

인적 없는 공터에 앉아 만덕산을 쳐다보며 시원한 물로 목을 축입니다.

 

 

 

 

이정표를 따라 '춘곡마을' 방향으로 들어서자 잡풀이 무성해 길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어림짐작으로 길을 잡아보았지만 사방댐까지 잘못 갔다가 다시 돌아옵니다.

 

인터넷을 통해 '대나무 숲길'을 따라 가야 한다는 힌트를 얻어 멀리 대나무가 있는 곳을 향해 무작정 가로질러 걸어갑니다.

 

 

 

 

잡풀 우거진 대나무 숲 입구를 걷어올리니 제대로 된 넓은 길이 나옵니다.

이제야 안심하고 삼남길 리본을 따라 갑니다.

 

 

 

 

 

 

앞으로는 강진만을 바라보고 뒤로는 만덕산을 배경삼아 춘곡마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춘곡마을 회관 앞을 지나 기룡마을, 초동마을, 도원마을을 연거푸 가로질러 걷습니다.

마을의 특성상 앞으로는 강진만을 바라보고 뒤로는 산이 자리하고 있어서 모두 마을 뒤에서 앞 방향으로 가로질러야 합니다.

 

어느 집 뒷 텃밭을 지나 나오면 앞 마당에서 부터 개짖는 사나운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리고선 집 앞 길을 통과해 또 누군가의 마당을 끼고 돌아가는 길이 계속됩니다.

 

 

 

 

 

 

사납게 짖는 개들이 묶여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걱정할 정도로 겁이 납니다.^^

 

 

 

 

 

오늘 만나는 마을들은 유난히 다른 곳보다 많은 폐가를 만납니다.

버려진 집과 가구, 전자제품들...

풀이 온통 뒤덮은 집 앞을 따라 삼남길은 계속됩니다.

인적이 없는 만큼 길은 사라지고 을씨년스럽기까지 합니다.

 

기룡마을 언덕배기에 올라서는 막다른 길을 만납니다.

도통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막혀 버린 신우대밭이 설마...하고 들어가보니...

 

 

 

 

마법처럼 길이 나타납니다.^^

 

 

 

 

그렇게 기룡마을과 초동마을, 도원마을을 통과합니다.

 

 

 

 

 

도원마을 앞 들녘에는 보리 수확이 한창입니다.

보리 수확이 끝난 논은 모내기를 위해 물을 가두어 두었습니다.

 

 

 

 

멀리 붉은 색 콤바인이 실린 트럭이 있는 곳에서 요란한 기계음이 들리더니 이내 멈춥니다.

 

트럭 앞을 지나치자 나이지긋하신 부부가 저를 부릅니다.

방금 콤바인 작업을 마친 젊은 청년들과 함께 조촐한 참을 즐기는 중입니다.

 

어정쩡한 자세로 인사드리며 다가서자 시원한 맥주를 건네시며 안주상 앞으로 이끄십니다.

시원한 맥주와 수박 화채에 갈증이 확 가십니다.

 

"먼저 와야지 가믄 쓴당가?"

시골 인심 가득 담긴 말씀에 절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어디를 가는 중이냐고 물으시는 어르신들과 (삼남길) 리본을 따라서 서울까지(!) 가는 중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ㅋㅋ..

글쎄 언젠가 사람들이 와서 동네마다 리본을 달아두드만 그런 것이냐고 놀라십니다.

 

고맙게 잘 먹었다는 인사를 드리자 더위 먹지 말라(!)고 격려도 해주십니다.^^

 

 

 

 

 

멀리 산등성이에 청자 무늬가 선명합니다.

강진은 청자의 고장입니다.

 

강진읍내가 가까워졌지만 산림조합 장례식장 뒷쪽 길에서 또 한차례 잡풀과 만납니다.

다행히 리본이 선명하고 길의 흔적으로 쉽게 찾을 수 있어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습니다.

걷기에도 크게 힘들지 않습니다.

 

 

 

 

 

 

강진의료원 앞 국밥집에서 점심을 먹기로 합니다.

아침을 빵으로 먹은 탓인지 허기가 느껴집니다.

 

 

 

 

뚝배기 한 그릇에 한결같은 마음을 담은 국밥을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영랑생가 앞 탑골샘까지 금새 걸었습니다.

 

 

 

 

 

 

 

 

지난번에 방문하지 못했던 영랑생가와 시문학파 기념관을 관람하기에 적당한 시간에 도착합니다.

 

 

 

영랑생가와 시문학파 기념관의 사진을 몇 장 올려두기로 합니다.

 

<영랑생가>

 

 

 

 

 

 

 

 

 

 

 

 

 

<시문학파 기념관>